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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동유럽, 발칸

1602 동유럽, 발칸 패키지 10일: 프라하- 네루도바 거리, 카를교, 카를로바 거리

2016. 4. 10. 댓글 ​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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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성을 둘러 보고 이제 우리는 구시가지 쪽으로 걸어서 이동할 예정이다.

 

지도를 보니 프라하성 정문을 빠져나와서 왼쪽편 길을 따라 내려가면 될 것 같아 보인다.

내 동물적인 감각을 믿고 길을 따라 내려간다.

 

갑자기 나타나는 이 멋진 거리는 네르도바 거리다.

반들반들하게 닳은 네모진 돌들이 촘촘히 박힌 길 한쪽으로는 바로크 양식의 멋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네루도바 거리

네루도바 거리는 프라하성의 흐라트차니 광장에서 성 미콜라스 성당이 있는 소지구 광장에 이어지는 길이다.

1850년 부터 낭만파 시인이자 언론인인 얀 네루다가 47번지에 살았던 곳으로, 그의 이름을 따 거리 이름을

만들었다.

과거에 번지조차 부여 받지 못한 집들은 각각 자신의 집을 상징하는 상징물로 번지를 대신했다.

 

블로그 작성 중 알게된 사실.

위 사진의 오른쪽 끝 건물, 두 개의 태양이 새겨진 건물이 바로 네루다의 집이다.

 

위 사진 오른쪽 건물에 네루도바 라고 쓰여진 것을 보고 네루도바 거리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위 사진 왼쪽 건물은 바다 가재 문양의 집.

 

위 사진 가운데 집은 붉은 사자 문양의 집.

 

이런 예쁜 건물들이 계속 눈을 즐겁게 한다.

 

아마도 프라하의 거리 중 가장 낭만적인 거리가 아닌가 싶다.

 

이 거리에서 차만 없다면 바로 중세 시대 풍경 그대로 일 것 같다.

 

이 집은 열쇠 문양의 집.

 

낭만적인 이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피로가 씻겨 나가는 기분이다.

 

오늘 나는 자유여행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맘껏 누리고 있다.

 

옥색 지붕의 성 미콜라스 성당이 보이는 걸로 봐서 이곳은 소지구 광장.

 

이곳에서 성 미콜라스 성당을 바라본다.

성당 안에 들어가볼까 생각도 했지만 오늘 꽤 많이 걸었으므로 일단은 사진만 찍고 이동하기로 했다.

 

이쯤에서 우린 기념품 가게에 잠시 들렀다.

여기서 마눌님은 '프라하' 라고 씌여져 있는 스카프 하나를 구입하였다.(10유로)

 

요기서 공중부양하는 도인? 도 만났다.

나는 저 공중 부양의 비밀을 알고 있지만, 어쨋건 오른쪽팔을 하루종일 뻗고 있어야 하니 도인만이 가능한

일일 듯도 하다.

 

12시 10분경, 우리는 카를교에 도착하였다.

세번째 찾아온 카를교, 이젠 너무 익숙하다.

이로써 아침, 점심, 저녁의 카를교의 모습을 우린 다 경험하는 셈이다.

 

어제 아침에는 보이지 않았던 화가가 보인다.

 

요긴 기념품 노점.

 

프라하의 연인.

역시나 프라하엔 연인들이 많다.

 

왼쪽편 전경.

 

역시 왼쪽편 전경.

어제처럼 블타바 강물은 유유히 흐른다.

 

오늘도 역시 성 요한 네포무크 성상의 부조 앞에는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부지런히 걸어보자.

 

드디어 반대쪽 브릿지 타워에 도착 하였다.

 

구시가지쪽에서 어제 아침에 방문했던 프라하성을 바라 본다.

그리고, 우리가 이틀전 매달았던 자물쇠가 무사한지 확인하고 그 자물쇠와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다.

부디 우리가 빈 소원이 성취 되었으면 좋겠다.

 

이 멋진 도시를 설계한 위대한 황제 카를 4세를 다시 만났다.

 

구시가지 광장으로 이동 중 '문지방에 걸터 앉은 리부셰 공주'의 조각상을 찾아 봤는데 찾지는 못했다.

 

기념품 가게가 밀집해 있는 카를로바 거리를 지난다.

 

놓치기 쉬운 이 건물이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클레멘티움' 이다.

고딕양식의 프라하에 바로크 양식을 가미하게 만든 바로 예수회의 본부다.

* 클레멘티움

클레멘티움은 과거 도미니크 수도원의 본부였다.

1556년 황제 페르디난트 1세가 후스파에 의한 종교개혁의 확대를 억제하기 위해 예수교파를

프라하로 끌여 들였다.

그들은 카톨릭과 관련이 없는 책은 이교도의 책이라 해 하루에 4,000여권씩 소각 했는데, 이는 유럽판

분서 갱유라고 할 수 있을 정도 였다.

또한 반종교개혁의 중심 세력이던 예수회는 새로운 무기로 바로크를 도입했다.

그들은 기존의 교회를 바로크 양식으로 리노베이션 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바로크 양식의 성당을 지었다.

클레멘트 수도원에 프라하 최초의 예수교회 '구세주의 교회'를 세우는 등 예수교파 확장의 중심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세력은 1773년까지 이어졌다.

그 이후 프라하 대학의 도서관, 현재에는 국립 도서관으로 쓰이고 있다.

* 체코의 복수

귀족들이 몰락하고 재산을 빼앗기고 처형 당했던 뼈아픈 역사 때문에 프라하 시내뿐 아니라 체코 전역에

남아 있는 바로크 양식의 성당에서는 미사를 보지 않는다.

저녁에는 음악 콘서트 장소로, 낮에는 관광 장소로 사용된다.

현재 체코 인구의 60 퍼센트 이상이 무신론자이고, 해가 갈수록 그 수가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전 세계에 세워진 성당 대부분은 카톨릭 소유이지만 프라하를 비롯한 체코 전역에 남아 있는

성당들은 전부 국가 소유다.

 

계속 이동 중.

 

틴 성당이 보이는 걸로 봐서 구시가지 광장에 거의 다 왔다.

 

시계탑과 틴성당, 그리고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이 멋진 프라하를 만들어 낸다.

이 비현실적인 광경이 21세기를 살아가는 동시대의 광경이라니 보고 또 봐도 믿기 어렵다.

큰 이변만 없다면 백년, 천년 후에도 이 모습이 그대로 유지가 될 것이다.

 

왜 '프라하' '프라하' 하는지 알겠다.

언제 어느 시간에 찾아도 멋진 이 도시를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점심 식사를 하러 이동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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