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십년전 정확하게 말하자면 2008년 5월에 천혜의 오지이자 천상의 화원 곰배령을 올랐었고 정상에서 큰 감동을 받았었다.
그동안 곰배령은 내 마음속에 일종의 히든 플레이스 같은 곳이었다.
언젠가는 또 가야지 가야지 했지만 세월은 무심하게 흘렀고 그렇게 십년이 흘러 버렸다.
6월 24일.
원래는 박군과 선유도 버스 패키지 여행을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여행 며칠전 모객이 안되어서 취소 되었다는 통보를 받게 되었고 나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고민 끝에 여행지로 곰배령을 떠올렸다.
그런데 산림청 예약도 해야 하고 여행사 예약도 해야하고 여러가지로 시간이 촉박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삭줍기 신공으로 산림청 예약을 했고, 홈피상 마감인데 여행사 전화 찬스를 통해 여행사 예약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곰배령 산행은 결정되었고 드디어 출발일이 다가왔다.
6월 24일 오전 6시 30분 광화문 출발이라는 가혹한 일정인데 착한 마눌님이 광화문역까지 태워다 주어서 편하게 올 수 있었다.
청산도 여행으로 다시 시작된 나와 여행자클럽의 인연은 아마도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아침식사 대용으로 떡 하나를 주셨다.
오전 9시 반경 진동분교에 도착.
주민들과 군청과의 분쟁으로 주차장까지의 약 2km의 길은 버스 통행이 통제되어 있다.
우리는 땡볕을 2km 더 걸어야 한다고.
2008년 5월에 하루 묵었던 풀꽃세상 표지판을 보니 반갑다.
많은 장독대가 인상적인 산골밥상이라는 식당은 왠지 맛집일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사진을 남겨 봤다.
입산 허가증을 받았다.
지금 시각은 9시 55분.
오후 2시까지는 하산을 해야 한다.
이때 바로 올라갔어야 했는데 내가 우겨서 산나물전을 먹기로.
소박한 찬과 곰취 막걸리.
산마물전(만원)은 밀가루나 부침가루가 거의 안 들어간 진정한 산나물전이었다.
독특한 산나물의 향이 흠씬 풍겨나오는 전이었다.
난생 처음 고양이가 젖 물리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고양이는 왠지 새끼도 밥을 먹을 것 같은 착각을 가지고 있었다.
오전 10시 반경 산행을 시작했는데 남들보다 30분 늦게 출발해서 맘이 급하다.
내 기억속에 곰배령 산행은 별로 어렵지 않았던 것 같았다.
우리는 때를 잘못 맞춰 방문해서 들꽃은 거의 없다고 한다.
강선마을을 지나고.
내 기억속에 어렴풋이 떠오르는 돌다리가 보여서 반가왔다.
이제는 돌다리는 통제되어있고 다리로 지나가야 한다.
나의 욕심 때문에 30분 지체되어서 맘이 급하다.
마지막 고비다.
12시경 곰배령 정상에 도착하였다.
통상 2시간 걸리는 거리를 우리는 전력질주하여 1시간 반에 올라온 것이다.
올라온 길로 내려가면 5.1km, 다른 능선길로 내려가면 5.4km이다.
10년만에 다시 찾은 곰배령과 소점봉산.
붓꽃으로 추정되는 파란 꽃만이 쓸쓸이 피어 있다.
10년전의 한적함까지 바란 건 아니지만.
오늘 곰배령엔 들꽃마저 거의 피어 있지 않아서 약간의 실망감이 느껴졌다.
그래도 십년만의 재방문이라는 사실이 풍경에서 얻는 감동과 다른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12시 20분경 하산 하기로 결정.
여기서 나는 또한번의 욕심을 부렸다.
올라온 계곡길로 내려갔었어야만 했다.
거리상 겨우 300m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우리는 능선길을 택했다.
처음엔 울창한 숲길을 걷는게 참 좋았다.
그런데 이 능선길이 장난이 아니다.
계속 나타나는 오르막길 내리막길에 나는 거의 탈진 상태.
모처럼 산행에 가져온 DSLR의 무게도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오늘 두번의 과욕은 나를 정말 힘들게 만들었다.
거의 다 내려왔다고 생각했는데 등산로 마지막 부근의 돌길은 정말 치명적이었다.
정말 나의 힘을 모두 소진한 끝에 오후 2시 5분경에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넉넉치 않은 시간덕에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한 정말 힘든 산행이었고, 힘든 정도는 거의 한라산 산행 때와 맛먹을 정도 였다.
오미자 주스를 원샷하고 나니 조금 정신이 들었다.
오늘의 늦은 점심 식사 장소는 내가 아까 눈여겨 봐 두었던 산골밥상에서 한다고 한다.
오후 2시 반경 산골식당에 입장.
아마도 산채정식으로 예상되는 메뉴의 음식이 나온다.
보쌈도 조금 나오고.
아마도 토장으로 슴슴하게 끓여낸 된장찌개가 참 구수하고 개운하다.
모든 나물들의 향이 살아있고 맛도 좋아서 모든 분들이 맛있게 식사를 했다.
여기 산채가 너무 맛있다고 하니 가이드분이 최고의 밥상은 비수구미 마을에서 맛볼 수 있다고 알려 주셨다.
비수구미 마을도 여행 리스트에 올려 놔야 할 것 같다.
맛있는 산채정식으로 당을 보충하고 나니 비로서 정신이 들고 오늘의 산행이 파노라마 처럼 떠오른다.
두번의 과욕으로 무척 힘든 산행이었지만 십년만에 다시 오고 싶었던 곰배령을 찾은 것은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 행위였다.
들꽃이 만발할 때 내가 다시 곰배령을 오를 수 있을까 어떨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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