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첫번째 일정은 세느강 유람선 탑승이다.
* 파리 관광 지도
9시경 바토무슈 선착장에 도착하였다.
날은 흐리고 가랑비가 약간 오락 가락 한다.
그래도 잠시 후 비가 거의 그쳤다. 다행~^^
우리가 탈 바토무슈는 Jean Bruel의 주도 아래 1949년에 설립되었다고 한다.
https://goo.gl/maps/B5SYrLaRgDyNvDX26
바토무슈의 티켓.
기념품으로 챙겨도 될만큼 멋진 티켓이다.
우리나라 관광지의 티켓도 보다 세련된 형태로 만들어 졌음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바토무슈 유람선은 알마 다리 동북쪽에서 출발하여 시테섬을 돌아서 되돌아 오는 코스로 운행된다고 한다.
대략 1시간 10분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한국어 안내 방송이 나오지만 녹음 방송이라서 우리가 지나가는 건물과 일치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냥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니깐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 바토무슈 운행 코스 지도
유람선이 출발하고, 다리를 통과 한다.
다리 이름은 모름.
이 다리는 딱 봐도 알겠다.
바로 알렉상드로 3세교, 다리 위 황금 조각상이 눈에 확 띤다.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다리라고 한다.
멀리 대관람차 옆에 보이는 것은 오벨리스크.
오벨리스크가 있다는 것은 그곳이 콩코드 광장이라는 뜻이다.
저 오벨리스크는 1829년 이집트의 통치자 모하메드 알리가 룩소르의 사원에 있던 것을 프랑스에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콩코드 광장은 원래 루이15세 광장 이었으나, 프랑스 혁명 당시 단두대가 세워지면서 대혁명 광장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1830년에 와서야 지금의 이름인 콩코드(조화, 화합이라는 뜻) 광장으로 개칭 되었다고 한다.
저 대관람차는 임시로 운영 되는 것이라고 한다.
너무나 유명한 오르세 박물관.
가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패키지 여행자의 숙명이니 받아 들여야 한다.
과거 기차역으로 쓰이던 것을 미술관으로 개조해서 1886년 오르세 미술관으로 재탄생 했다고 한다.
루브르 미술관이 고대에서 1848년까지, 오르세 미술관이 1848년 부터 1914년까지, 퐁피두 미술관이 1914년 부터
현재까지의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비록 바람이 거세지만 위층으로 올라가서 봐야 제대로 된 야경을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가족은 모두 위층으로 올라갔다.
이 건물은 아마도 내일 아침에 갈 루브르 박물관 같아 보인다.
규모가 어마 어마 하구나.
위층으로 올라가니 비로소 확 트이는 전망이 눈앞에 펼쳐진다.
진작 올라올 걸 그랬다.
배위에서 보는 세느강변의 야경은 정말 너무 멋지구나.
세느강의 차가운 강 바람을 맞으며 바라보는 파리의 야경은 낭만적이다 못해 황홀할 지경이다.
누가 세느강이 한강만도 못하다고 했는가?
그 혹은 그녀는 아마도 한낮에 유람선을 탔거나 아니면 일층 객실안에만 머문 사람일 것이다.
만약 한밤 파리 야경을 위층에 올라서 봤는데도 감동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감정이 메마른 너무나 불쌍한
사람일 것이다.
다리를 지날 때마다 배위의 소년과 소녀들은 함성을 질렀다.
우리도 같이 소리 지르며 그들과 함께 기쁨을 공유하였다.
너무나 익숙한 노틀담 성당이 눈앞에 나타났다.
* 노틀담 성당이 있는 이곳은 시테섬이다.
기원전 3세기경 부터 켈트족 사람들이 세느강에 있는 시테섬에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파리라는 명칭은 기원전 부터 이곳에 살던 켈트족의 한 부족인 파리시이(Parisii)부족의 이름을 딴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이곳은 과거 로마 시대와 중세시대 파리의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 작은 섬안에 노틀담 성당, 콩시에르쥬리, 생 샤펠 성당, 최고 재판소, 경찰청, 시립병원 등이 있다고 한다.
그중 '성모 마리아' 라는 뜻을 지닌 노틀담 성당은 루이7세 때 모리스 쉴리 주교의 지시로 시작되어 1163-1345년
까지 3세기에 걸친 대공사를 통해 지어진 대표적인 고딕 성당이라고 한다.
이 성당은 잔다르크의 명예회복 재판, 나폴레옹의 황제 대관식, 드골장군과 미테랑 대통령의 장례식 등 프랑스의
주요 행사나 장례 미사가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한다.
아마도 이 사진이 노틀담 성당의 정면 일 것이다.
* 1572년 신교와 구교의 화해를 위해 신교도 대표 앙리와 구교도 대표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의 결혼식이 있었다.
결혼식은 노틀담 성당에서 성대하게 치러졌다.
이 결혼식은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대학살' 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으로 막을 내리고 만다.
그러나, 결혼식 당사자 였던 앙리4세는 추후 1589년 프랑스 왕(부르봉 왕가)이 되고나서, 1598년 낭트 칙령을
통해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 주었다.
이로써 40여년 동안 프랑스 전체를 갈가리 찢어 놓았던 종교전쟁은 막을 내렸다.
프랑스 사람들이 오늘날까지도 가장 좋아하는 지도자로서 앙리4세를 꼽는 이유는 바로 그가 적을 용서할 줄
아는 용기와 도량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언젠가 다시 파리를 방문해서 파리의 기원이 된 시테섬과 역사적인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대학살'의 현장인
노틀담 성당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싶다.
이렇게 스쳐가기엔 너무 아쉬운 노틀담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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