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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하노이, 하롱베이

1906 하노이, 하롱베이 3일: 문묘에 가다.

2019. 7. 1. 댓글 ​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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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 4명은 택시를 타고 문묘에 간다.

* 문묘

1070년 리 왕조 시절 지어진 유교 사당으로 중국의 고대 사상가인 공자를 모시고 있다.

궁궐처럼 성벽에 감싸 있으며, 출입문과 내벽으로 분리된 5개의 안뜰을 갖고 있다.

문묘 내에는 유학을 가르치던 베트남 최초의 국립대학인 국자감이 들어서 있다.

 

오전 10시 20분경 문묘 입구에 도착하여 티켓팅(입장료는 3만동)

 

문묘의 첫번째 출입문은 문묘문이라고 한다.

당시는 신분제도가 엄격했던 사회로 아치 모양의 중앙문은 황제가, 왼쪽 문은 무관들이, 오른쪽문은 문관들이

출입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당당하게 중앙문으로 통과한다.

 

첫번째 문을 통과하면 나타나는 정원.

 

정원 왼쪽편에는 연못이 있다.

 

두번째 문(대중문)을 통과.

 

두번째 문 통과하면 나타나는 정원.

울창한 나무들 사이를 걷는 기분이 상쾌하다.

 

세번째 문은 규문각.

하노이를 상징하는 건물 중 하나로 하노이 지폐 10만동에 그려져 있다.

공자에 대한 존경과 숭배의 마음을 담아 지었다고 한다.

 

규문각을 지나면 나타나는 네모꼴의 연못은 천광정이라고 한다.

즉, 하늘의 빛을 담아낸 우물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연못 옆에는 전각이 몇 개 있는데 전각 안에는 거북이 등에 새겨진 비석인 진사제명비가 놓여 있다.

이 비석에는 과거에 합격한 사람들의 명단과 출신이 한자로 젹혀있다.

 

연못의 오른쪽편.

 

옆쪽에서 바라본 규문각의 모습.

 

연못 건너편에서 바라본 규문각의 모습.

 

네번째 문은 대성문이다.

 

대성문을 통과하면 문묘의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공자를 모신 대성전이 나타난다.

대성전은 앞, 뒤 두 전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의 전각은 제례를 올리는 공간이고, 뒤의 전각은 공자와 그 제자들을 모신 공간이다.

 

대성전 지붕엔 용의 장식이 있다.

 

이분이 바로 공자님.

 

공자님 좌우로 공자의 유명한 제자들인 안회, 증자, 자사, 맹자를 모셔 놨다고 한다.

다른 분 블로그글을 참고해 보니 위 사진의 좌측이 맹자, 우측이 증자라고 한다.

 

이분들은 좌측이 안회, 우측이 자사라고 한다.

 

나는 여기서 아들의 학업운을 빌었다.

 

만세사표는 만세에 귀감이 되는 스승이라는 뜻으로 공자를 일컷는 말이라고 한다.

 

봉황 한마리가 신성한 거북이 위에 서 있는 청동상이 있는데 거북이 머리가 빤지르 한 걸 보고 나도 한번

쓰다듬어 줬다.

어느 관광지에 가나 뭔가 빤지르 한 곳이 보이면 그곳을 문지르고 소원을 빌면 대체적으로 맞는 행위다.

 

대성전 옆 문으로 빠져 나가면

 

국자감을 만난다.

1076년 개교한 국자감은 유학을 가르치던 베트남 최초의 국립대학이자 왕족 교육을 담당하던 곳으로

수많은 유학자를 배출해냈다.

원래의 국자감 건물은 1946년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파괴되었으며 2000년에 복원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국자감 왼쪽편 건물.

 

국자감 건물 안으로 입장.

 

현재 국자감 건물은 문묘와 국자감 건설에 관련된 베트남 역대 군주 및 국자감과 관련된 인물들을 모시는

장소로 사용된다고 한다.

이 동상은 베트남의 유학자이자 국자감을 관할했던 주문안(쭈반안)이다.

 

이건 관리들의 의복이 아닐까.

 

다시 한번 아들의 학업운을 빌었다.

 

문묘를 빠져 나가려는데 커다란 북 하나가 보인다.

국자감 좌우에 종루와 고루가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위 사진은 고루다.

이제 우리는 문묘를 나와서 하노이 고성에 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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