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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기 여행 이야기

2209 성북구 사찰 탐방 (4): 정릉

2022. 10. 4. 댓글 ​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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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천사를 나와 다음 스팟인 정릉으로 이동한다.

오후 4시 반경 정릉 입구에 도착 표를 사고 안으로 입장한다(입장료 1천원).

크게 둘러 보고 싶지만 체력고갈+ 당 고갈로 정릉만 가볍게 둘러 보고 산책은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정릉은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무덤이다.

원래 정동에 있던 것을 태조가 사적 감정 때문에 이곳으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곰곰히 기억을 떠올려 보니 청계천에서 정릉의 일부 석조물을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첫 느낌은 이전에 다녀본 다른 능과 비슷하다 였다.

그런데 다른 점이 하나 있다.

홍살문이 정자각의 정면 앞쪽에 있지 않고 옆쪽에 나 있다.

왜 이렇게 지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즈음 나는 체력고갈+ 당 고갈로 거의 방전 상태였다.

정릉 숲길 산책은 무리라고 판단하고 근처 맛집을 검색하였다.

내 레이더에 포착된 식당은 <봉화묵집>이다.

바로 근처의 봉화묵집으로 이동하여 건진국수 한 그릇을 맛있게 비워냈다.

이대로 집에 가도 좋지만 마지막으로 근처 <봉국사>에 들러 보기로 했다.

 

* 정릉은 이번이 첫 방문이다.

* 봉화묵집은 따로 포스팅 예정이다.

 

조선 태조(太祖, 재위 1392∼1398)의 계비로 방번(芳蕃)·방석(芳碩) 두 왕자와 경순공주(慶順公主)를 낳은 신덕왕후(神德王后 ?~1396) 강씨의 무덤이다.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208호로 지정되었다. 원래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주한영국대사관 자리 추정)에 능역이 조성되었으나 다른 왕릉과는 달리 정릉만이 도성 안에 있고, 너무 크고 넓다 하여 도성 밖 현재의 위치로 이장하였다. 이는 태조가 신덕왕후 소생인 여덟째 왕자 방석(芳碩)을 세자로 정한 것에 대한 태종의 사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태종은 옛 정릉의 일부 석조물들을 홍수로 유실된 광통교를 다시 세우는 데 갖다 쓰고, 정자각도 없앴다. 능은 묘로 격하되어 일반 무덤과 비슷해졌고, 신덕왕후는 후궁으로 강등되었다. 1669년(현종 10) 송시열의 상소에 의해 신덕왕후는 왕비로 복위되었고, 무덤도 왕후의 능으로 복원되었다. 정릉은 다른 왕후의 능에 비해 빈약한 편으로 병풍석이나 난간석이 없으며, 상석과 상석을 받치는 고석(鼓石)과 장명등, 망주석·석양(石羊)·석호(石虎)·문인석·석마(石馬) 각 1쌍이 배치되어 있다. 그 중 장명등은 고려 공민왕릉(현릉)의 양식을 따른 것으로 조선시대 능역에서 가장 오래된 석물인 동시에 예술적 가치도 높다.

- 네이버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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