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는 다음 스팟인 진주성으로 이동한다.
오전 11시 반경 공북문 앞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티켓팅을 하였다- 1인 2천원.
진주성은 오래전부터 한번 와 보고 싶었던 곳인데 이제서야 방문하게 되었다.
공북문으로 들어가서 반시계 방향으로 둘러 보기로 했다.
치열했던 역사적 장소이지만 현재는 평화로운 공원 같은 모습이다.
남강과 어우러진 촉석루가 예상한 것보다 크고 아름다웠다.
* 진주성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서 본성동에 걸쳐 있는 둘레 1.7km의 석성(石城)으로, 원래 토성이었던 것을 고려 말 우왕 때 석성으로 개축하였다. 임진왜란 당시에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인 진주 대첩의 현장이기도 하다.
진주성은 백제 때 건설되었으며 당시에는 거열성지(居烈城址)였다고 하며, 산성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동쪽으로는 남강이 흐르고 강변 절벽 위에 성채가 만들어졌고 서쪽으로는 하천이 있어 천혜의 요새였다. 고려 말 공민왕(恭愍王) 때 7차례 중수되면서 남해안에 출몰하여 분탕질하는 왜구를 방비하는 기지로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시민(金時敏) 장군이 성채를 보강하여 왜군의 공격을 대비하였다. 1592년 9월 왜군은 약 2만 5천 명의 병력으로 진주성으로 공격해 왔지만 김시민 장군에게 대패하여 임란 3대첩(壬亂三大捷) 중의 하나가 벌어진 곳이다. 1593년 6월 왜군은 곡창지대인 호남을 공략하여 군량미를 확보하고자 약 10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 왔다. 진주성은 호남으로 가는 길목으로 진주성이 무너지면 호남을 잃게되는 중요한 요충지였다. 2차 전투에서는 군관민 6만이 최후까지 항쟁하여, 장렬한 최후를 마쳤고 왜군도 막대한 피해를 입어 호남으로 쳐들어갈 여력을 상실하였다. 이때 논개(論介)는 적장을 안고 남강(南江)에 투신한 일화가 유명하다.
공북문
중영
촉석루부터 둘러 보기로.
김시민 장군 동상
* 김시민
임진왜란 때 벌어진 진주 대첩에서 큰 승리를 이끌어 낸 조선의 장군이다. 3,800여 명의 군사와 백성으로 2만여 명의 일본군을 물리쳤다. 전투 후 숨어 있던 적군의 총탄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복주머니
성벽과 깃발.
조선시대 대형 총통.
김시민 전공비와 진주 촉석 정충단비.
호국종각.
촉석루에 대한 설명
촉석루
위에서 내려다 본 촉석루.
촉석루- 역광이어서 촬영이 어려웠다.
촉석루의 에전 모습.
촉석루의 측면 모습.
촉석루의 측면 모습.
촉석루에서 바라본 남강.
촉석루 현판.
영남제일형승- 영남 제일의 지세와 풍경
의기사는 논개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의기사 입구.
의기사에 모신 논개의 초상.
진주 의암.
의암에 관한 설명.
촉석루와 남강.
국립진주박물관에 잠시 들르기로 했다.
별 기대없이 들어왔는데 유물 전시를 꽤 잘해 놓았다.
윤여환이 그린 논개 초상- 2007년 표준 영정으로 지정 받았다.
의기사에 있는 논개 초상이 이것이다.
영남 포정사 문루.
천사상과 복주머니.
진수성 우물.
이로써 간단하게 진주성 관람을 마쳤다.
진주중앙유등시장 안 수복빵집에 갈까 말까 고민을 했는데 그래도 진주까지 왔으니 한번 가보기로 했다.
다시 공영주차장에 어렵게 주차를 하고 오후 1시반 도착 & 줄서기.
찐빵 2, 꿀빵 1로 주문.
다행히도 30분만에 겟.
차로 돌아와 찐빵과 꿀빵 맛을 봤는데 꽤 맛이 좋았다.
다음 스팟은 사천 무지갯빛해안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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