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7월 31일 수요일, 여행 4일차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초새벽 4시에 잠에서 깼다.
오늘 아침은 간단하게 한국에서 가져온 컵라면으로 해장하였다.
오늘은 엘베다가 가이드하는 이스탄불 일일투어가 예정되어 있다.
오전 8시 50분 돌마바흐체 시계탑 앞에서 집결이다.
* 엘베다가 가이드 하는 이스탄불 일일투어 일정
돌마바흐체 궁전-> 블루모스크-> 히포드럼 광장-> 1001 저수지-> 아야 소피아(외부)-> 톱카프 궁전(하렘 포함)
* 원래는 예레바탄 지하 저수지 였는데 휴관일이랑 겹쳐서 1001 저수지로 일정이 변동되었다.
* 입장료
돌마바흐체 궁전(하렘 포함/ 1,050리라)/ 1001 저수지(350리라)/ 톱카프 궁전(하렘 포함/ 1,500리라)
= 총 2,900리라
* 돌마바흐체 궁전- 나무위키
https://namu.wiki/w/%EB%8F%8C%EB%A7%88%EB%B0%94%ED%9D%90%EC%B2%B4%20%EA%B6%81%EC%A0%84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위치한 오스만 제국의 궁전. 튀르키예어로 '뜰로 가득 찬'이라는 뜻인 '돌마바흐체'라는 이름이 붙고, 화려한 석조 건축물로 세워진 궁전이다. 돌마바흐체 이전에 세운 궁전인 톱카프 궁전과 함께 오스만 제국의 주요 궁전에 꼽힌다.
이 궁전은 원래는 목조 건물이었으나 1814년의 대화재로 대부분 불타고 31대 파디샤인 압뒬메지트 1세(Sultan Abdülmecit) 시기 아르메니아인 건축가인 가라벳 발얀에 의하여 1856년에 재건되었다[1]. 잘 다듬어진 대리석으로 유럽 스타일을 본떠 지어졌는데 특히 유럽에서 보내온 수많은 헌상품과 호화롭게 꾸며진 사방의 벽들을 보면 당시의 생활을 짐작할 수 있다. 오스만 제국 시대 후기 6명의 황제들이 일부 사용했다. 다만 조선의 수도 한양에도 궁궐이 여러 곳이 있듯이 오스만 황제들도 돌마바흐체에서만 거하지 않았다. 황제들 가운데 별궁을 더 좋아해서 이쪽에 더 오래 머물던 경우도 있었다. 이를테면 대인기피증 의심을 받고있는 압뒬하미트 2세의 경우 돌마바흐체 궁전이 보안상 취약하고, 사람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비좁은 이을드즈 궁전이나 돌마바흐체 궁전 맞은편에 위치한 베일레르베이 궁전에 주로 머물렀다.
이후 오스만 제국의 술탄제가 폐지되고 최후의 칼리프 압뒬메지트 2세의 거처가 되었다가, 튀르키예의 국부라 불리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튀르키예 공화국을 건설하고는 여기에 입주하여 후궁들이 살던 하렘의 방 하나를 집무실 겸 관저로 삼다 사망 후에는 관광객에게 개방하였다.
* 돌마바흐체 궁전 평면도- 위키백과 영문판에서 인용
1) Mosque of the Queen Mother 2) Clock Tower 3) Police Station 4) Treasury Gate 5) Ticket Office 6) Selamlık Garden 7) Selamlık 8) Hediyelik Eşya 9) Muayede Salonu 10) Garden 11) Camlı Kiosk 12) Clock Museum 13) Harem Garden 14) Entrance of Harem 15) Harem
* 돌마바흐체 궁전은 세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마베인–이 휘마윤' 혹은 '셀람리크'(남성들의 구역), '무아예데 살로누'(의식용 홀), 그리고 '하렘–이 휘마윤'(하렘, 즉 술탄의 가족이 거주하는 구역)이다. 궁전 안에는 285개의 방, 43개의 홀, 6개의 '하맘', 즉 목욕탕(중앙 하맘 하나는 순수하게 설화 석고로만 되어 있다), 그리고 68개의 화장실이 있다. 내부 장식에는 약 14t의 금과 6t의 금이 사용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돌마바흐체 궁전 [Dolmabahçe Sarayı]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1001, 2009. 1. 20., 리처드 카벤디쉬, 코이치로 마츠무라, 김희진)
* 돌마바흐체 궁전 평면도- 인터넷 검색으로 얻은 것.
오전 8시경 호텔을 나와 토판역에서 트램을 타고 카바타쉬역으로 이동하였다.
카바타쉬역에서 나와 시계탑까지 도보 이동 중.
이스탄불 여행 하다 보면 저런 시미트 노점이 많이 보인다.
아마도 서민들의 아침 식사 대용일 것이다.
돌마바흐체 모스크에 도착.
돌마바흐체 모스크는 1854년 압뒬메지드 시대에 돌마바흐체 궁전 인근에 세워진 신고전주의 양식의 모스크이다.
웅장한 돌마바흐체 시계탑에 도착.
저기 입구가 보인다.
Treasury Gate 앞에서 인증샷을 찍으면서 미팅 시간을 기다렸다.
오전 8시 50분 엘베다와 오늘 투어 같이 할 분들을 만나 오늘의 여정을 시작한다.
* 오늘 투어에서는 셀람륵만 관람한다고 한다.
티켓이 있으면 일주일 안에 하렘과 국립고궁회화박물관에 언제든 입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는 내일 하렘과 국립고궁회화박물관을 보러 돌마바흐체 궁전을 다시 방문할 예정이다.
궁전 안으로 입장.
궁전 안으로 들어가니 화려한 Selamlık Garden이 나온다.
돌마바흐체 궁전 모습.
보스포루스 해협쪽으로 난 문.
셀람륵으로 입장.
* 소박한 톱카프 궁전에 살았던 술탄들은 하얀 터번을 착용했고, 화려한 돌마바흐체 궁전에 살았던 술탄들은
빨간 모자 페즈를 착용했다고 한다.
빨간 모자 페즈를 착용한 왕들이 오스만 제국을 말아 먹었다고 함.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내부는 유럽의 궁전을 연상시키는데 베르사유 궁전을 가 보지 못해서 베르사유 궁전과 비교는 할 수 없었다.
기억에 남는 건 크고 화려한 크리스털 샹들리에다.
* 2층으로 구성된 건물 내부는 베르사유 궁전의 느낌이 나는데 자금성의 원명원처럼 베르사유 궁전을 모델로 했기 때문이다. 건물 내부의 장식 중에 크리스털 샹들리에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선물한 것이라 한다. 이 방에는 유럽에서 가장 큰 카페트[3]도 깔려있는데, 오늘날에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카페트가 생산되는 것으로 유명한 헤레케(Hereke) 카페트이다.
- 나무위키 인용
궁전 투어를 마치고 나왔더니 포토존이 나온다.
여기서 인증샷을 찍으려 했으나 빨간 옷을 입은 시선 강탈 외국남 한분이 이 자리를 완전 독점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인증샷은 내일로 미루기로.
보스포루스 해협으로 통하는 문.
Imperial Gate도 멋지다.
마침 모델 느낌의 외국 여성 한분이 인증샷을 찍고 있다.
빨간 꽃과 배롱나무꽃이 피어있는 셀람륵 정원이 참 아름답다.
날씨마저 예술이어서 더 아름답게 보였다.
이제 궁전을 빠져 나가기로.
Treasury Gate로 빠져 나왔다.
카바타쉬역으로 이동 중 Princes' Islands가는 배 선착장을 만났다.
기회가 되면 왕자들의 섬 중 하나인 뷔윅 아다를 한번 가보고 싶다.
우리는 카바타쉬역에서 트램을 타고 술탄 아흐메드역으로 이동하였다.
* 왕자들의 섬
이스탄불 앞바다인 마르마라해에는 9개의 섬이 있다.
비잔틴 제국 시대 왕실 권력 투쟁에서 밀려난 이들과 행실이 좋지 못해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 내리던
왕자 등 주로 로열 패밀리들의 구금장소로 이용되었던 것에 유래해 왕자들의 섬이라고 불리운다.
근대에 들어 이섬들은 이스탄불의 유력자들이 별장을 짓고 휴가를 즐기는 휴양타운으로 탈바꿈했고 오늘날까지
근대 유럽풍의 집들이 잘 남아 있다.
다음 스팟인 1001 저수지 가는 길에 만난 길거리 유적.
이스탄불에는 이렇게 유적이 길거리 아무데나 여기 저기 널려 있다.
오전 11시경 1001 저수지에 도착 & 입장
https://maps.app.goo.gl/rPLRFaUd3et9RjoZ8
이스탄불에는 200여개의 지하 저수지가 있다고 한다.
그 중 1001 저수지는 예레바탄 저수지에 이어 두번째로 큰 규모의 저수지라고 한다.
537년에 지었다고 한다.
* 혹자는 이곳을 '죽은 신들의 신전'이라고 불렀다.
고대 신전의 기둥들이 이곳에서 재활용되어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 이곳에서 영화 '인페르노'가 촬영되었다고 한다.
총 224개의 대리석 기둥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기둥을 설치한 것은 지진에 대비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1001은 많은 양이나 무언가의 배열에 사용되는 튀르키예식 표현이라고 한다.
1001 저수지를 간단히 둘러 보고 다음 스팟인 술탄 아흐메드 무덤으로 이동한다.
길거리에 개와 고양이 사료 자판기가 설치되어 있다.
튀르키예 사람들의 동물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술탄 아흐메트 무덤에 도착 & 입장.
* 술탄 아흐메트는 13세에 술탄의 자리에 올라 26세 때인 1616년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가 완성되는 것을
보지만 모스크 완공 후 겨우 1년만에 2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https://maps.app.goo.gl/BzU1Cwy6UFkyPFjL6
술탄아흐메드 1세(Sultan Ahmed I, 1590-1617)의 시신이 모셔진 영묘로서, 술탄아흐메드 모스크 북쪽에 있는
독립된 건축물이다
영묘 내부에는 술탄아흐메드 1세 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이자 황후였던 코셈(Kosem), 아들이자 후계자인 무라드 4세(Murad IV)와 오스만2세(Osman II), 딸인 아이세(Ayse)를 비롯한 40명의 왕족들이 안장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술탄 아흐메드 영묘 [Tomb of Sultan Ahmed]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천장은 역시 돔형태로 되어 있다.
실제로 시신이 저 관에 있는 것은 아니고, 그 밑의 땅을 파서 시신을 안치한 뒤에 그 자리를 표시하기 위해
저렇게 관을 올려두었다고 한다.
오스만 제국의 독특하고 화려한 무덤 건물을 보고 밖으로 나왔다.
이어서 아야 소피아 앞에서 아야 소피아의 역사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아야 소피아는 15층 건물 규모라고 한다.
아야 소피아 1층은 원래 왕과 남자가 기도하는 장소였고, 2층은 원래 왕비와 여자가 기도하는 장소였다고 한다.
532년 니카의 반란으로 두번째 아야 소피아가 불에 타서 사라졌다.
유스티아누스는 히포드롬에서 3만명을 죽이고 반란을 진압하였다고 한다.
대성당이 전소된 지 열흘 후인 532년 2월 23일,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아야 소피아의 재건을 결정,
5년 10개월 만인 537년 지금의 아야 소피아를 완공하였다.
아야 소피아는 2020년 박물관에서 모스크로 바뀌었고 2024년 1월부터 관광객은 2층만 유료 입장할 수
있게 되었다.
근본주의자 에르도안은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
아야 소피아 맞은편에 있는 블루 모스크.
537년에 완공된 아야 소피아, 1616년에 완공된 블루 모스크.
둘 사이에는 약 천년(1079년)의 시간차가 존재한다.
하지만 지금 이곳을 방문한 나는 이 두 모스크가 마치 같은 시대에 세워졌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 아야 소피아의 높이는 55m, 블루 모스크의 높이는 43m.
약 천년의 간극이 있지만 블루 모스크는 아야 소피아의 규모와 예술성을 뛰어 넘지는 못했다.
아야 소피아까지 둘러 보고 오전 투어를 마쳤다.
이제 점심식사를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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